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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정변' 57년…박정희에 대한 엇갈린 시선들

기사승인 2018.05.16  04: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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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TV 영상 캡쳐>

[뉴스웍스=김동호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 역사는 '경제를 부흥해 우리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은인'라는 시각과 '장기 군사독재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말살한 인물'이라는 판단을 함께 하고 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지 57년이 지난 지금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도 인색할 수 밖에 없지만 여러 측면에서 그가 우리 근현대사의 한 축임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961년 5월 16일. 당시 박정희 육군 제2군 부사령관을 주도로 하는 쿠테타 세력이 윤보선 정권을 무너뜨리는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등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을 주축으로 한 세력들은 '정군운동'이라는 미명 하에 결의를 했으나 이내 변질돼 군사정변으로 이어진 것.

당시 정치권의 상황은 자유당 몰락 이후 들어선 민주당 정권이 신·구파간의 갈등으로 분열되어 불안한 상태였다. 이에 박정희 등 쿠테타 세력들은 1961년 5월 16일 새벽,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했다.

군부는 박정희 대신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 장군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내세웠다.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다. 장 총장은 이후 국가반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박정희 세력에 의해 숙청되는 불운한 운명을 맞는다.

당시 윤보선 대통령은 미국 측의 무력진압 제안에 "국군끼리 전투를 벌여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북한의 공산군이 기회를 노려 남침한다"며 끝까지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사혁명위는 곧 바로 정변의 성공 사실과 함께 6개 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군사혁명위의 혁명공약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공고히 할 것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렴한 기풍을 진작시킬 것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것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권 이양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박정희가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사실상 19년간의 장기통치에 들어갔다.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1979년 자신의 부하였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숨을 거뒀다.

박정희 정권은 불법적인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정통성에 대한 지적과 임기 동안 숱한 인권탄압을 행해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현재까지도 그를 따르는 단체들이 많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 사건관 관련해 구치소에 갇혀 있으나 아버지의 후광으로 박사모 등 친박 단체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

김동호기자 (arang@newsworks.co.kr)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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