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7.06.20 09:15
미국의 원격정신상담은 전문의 부족과 진료의 편의성이 맞물려 크게 수요가 늘고 있는 분야다.사진은 지난해부터 Telepsychiatry 서비스를 시작한 American Well의 홍보물.

텔레메디신의 가장 큰 수혜(?)를 보는 분야가 정신건강관리다. 이른바 원격정신상담으로 번역되는 Telepsychiatry이다. 정신과 진료의 경우, 의료장비나 시설 의존도가 다른 질환에 비해 낮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원격 화상기술을 활용해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

미국에서 정신건강 서비스에 텔레메디신을 이용한지는 꽤 됐다. 1990년대 중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정신과의사 질 아프린(Jill Afrin)이 환자의 가정에 쌍방향 비디오를 설치하고 상담을 시도했다. (참조mhealthintelligence.com)

이후 2003년 미국 북애리조나주 정신건강국(Northern Arizona Regional Behavioral Health Authority, NARBHA)은 주 전체에 광범위하게 살고 있는 환자들에게 정신건강 상담서비스를 제공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대상은 정신건강 취약계층인 인디언이나 청소년, 교도소 수감자 등이었다.

텔레메디신을 적극 받아들이는 데는 위기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의 정신건강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신과 상담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는데 전문의는 크게 부족해서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의 정신과전문의는 12% 증가해 4만9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인구는 37%나 늘었다.

약물남용 및 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에 따르면 미국 내 정신질환 치료 대상자는 4300만 명에 이른다. 성인 5명 중 1명꼴인 셈. 이중 1000만 명은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추정된다.

어린이 환자도 늘고 있다. 전국정신질환자연맹(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 NAMI)은 8~15세 사이의 어린이 중 13%가 심각한 정신장애를 경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인구의 고령화로 우울증과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들도 치료 대상에 포함된다. 또 약물 오남용 환자나 참전 군인과 경찰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환자가 갑자기 는 것은 ‘환자보호 및 적정부담보험법(The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PPACA: 주1)시행에 기인한다.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있던 환자들이 대거 수혜대상에 포함되면서 치료 대상자가 급증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미국에선 정신과 환자의 40%정도만 의료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정신과전문의의 고령화도 문제다. 의사 검색업체 메리트 호킨스(Merritt Hawkins)에 따르면 전국 정신과 의사의 60%가 55세 이상이다. 또 이중 약 48%는 60세 이상으로 41개 전문분야에서 네 번째로 고령화됐다. 의대생들이 정신과를 기피하는 것은 다른 과에 비해 수입이 낮기 때문. 정신과 의사의 연평균 임금은 18만2700달러로 외과의사의 30%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역간 편차도 심하다. 예컨대 매사추세츠, 뉴욕,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같은 도시에는 10만 명당 15명의 의사가 있지만 몬타나, 와이오밍, 네바다, 아이다호 같은 주에는 6명 미만이다.

연방 기록에 따르면 정신과의사 비율이 전국 약 4000개의 지역은 3만 명의 환자 당 한 명꼴이라는 통계도 있다.

원격정신상담의 가장 큰 장점은 환자 접근성이 좋다는 것. 대부분의 환자가 정서적 또는 육체적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을 기피한다. 정신과 환자의 치료가 종종 중단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에는 원격의료 기술이 복잡하고, 값이 비쌌다. 설치비만 2만 달러나 들었다는 것. 하지만 요즘엔 데스크탑뿐 아니라 랩탑, 태블릿, 심지어 스마트폰까지 연결돼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환자에게 접근한다. 사운드와 비디오의 품질도 좋아졌다.

원격의료서비스를 받은 환자의 입원률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2006~2010년 사이에 텔레헬스 서비스를 받은 환자의 정신병원 입원율은 약 24%, 병원 입원기간은 26% 줄었다는 것이다.

원격정신상담 분야에는 MDLive, American Well, Iris Telehealth, TruClinic, MyOnCallDoc, JSA Health, Insight Telepsychiatry와 같은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MDLive는 지난해 50개 주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현재 병원 응급실, 교도소, 학교, 사업장, 외딴 지역 등 정신과의사가 없는 지역에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의 식사, 운동, 수면 패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GPS 시스템을 이용해 위치 파악도 한다) 치료 효과를 높이는데 활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중독치료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merican Well 역시 지난해 말 온라인 케어 플랫홈에 정신상담을 추가했다. 아메리칸 웰은 다른 회사보다 약물처방 등 더 광범위한 치료를 제공한다.

특화된 분야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도 눈에 띤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서비스는 게임과 같은 도구를 이용한다. 언어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질병 발생의 원인과 단서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서비스는 노화와 관련한 우울증과 치매에 중점을 둔다. 우울증 및 불안증의 선별검사에도 활용한다. 퇴역군인을 위한 원격보건서비스는 약물남용과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집중한다.

원격건강상담은 질병이 아니더라도 정신건강 관리에 폭넓게 쓰일 전망이다.

TAO(Therapy Assistance Online) Connect가 대표적이다. Sherry Benton 박사가 2012년에 시작해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플로리다의 TAO Connect는 온라인을 이용해 상담과 함께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카운셀러를 해준다.

원격정신상담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국가보건의료법률회사인 Epstein Becker Green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보건의료 서비스가 개인의 사생활이나 보안, 후속 치료, 응급 대처, 미성년자 치료 및 보상문제 등 법률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HIPAA(주2)가 있지만 이를 적용하는 법령이 주마다 다르다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원격의료협회(ATA, American Telemedicine Association)는 환자의 치료순응도, 임상결과, 가이드라인 준수 등을 평가해 등급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미시시피, 미주리, 네브래스카, 네바다, 오클라호마, 텍사스, 웨스트 버지니아 및 위스콘신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으며, 나머지 41개 주와 콜럼비아 특별구는 B 또는 C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원격건강상담은 원격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 갇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미국의 일부 정신과 의사들도 우리나라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온라인 진료가 환자와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논란을 피해가면서 원격의료의 장점을 살리고 싶다면 미국 뉴욕 주가 지난해 11월 원격의료의 규정을 완화한 사례를 참고해 볼만하다.

뉴욕 주 정신건강국(OMH, the Office of Mental Health)은 관내 250여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정신병 응급 및 입원 환자에게 원격정신상담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정신위생법 제31조에 의거해 독단적인 커뮤니티 치료(ACT) 또는 개인맞춤식재활서비스(Personalized Recovery Oriented Services, PROS, 주3)프로그램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 환자는 여전히 ​​의사와 얼굴을 맞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주정부는 원격상담의 대상을 의사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이나 응급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한정했다. 특히 환자의 서면 동의서를 받는 것은 물론 진료방법에서 비디오나 오디오 외의 전화, 전자메일, 팩스 등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주1) PPACA(The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환자보호 및 적정부담보험법):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보험 개혁시스템으로 오바마 케어로 불린다.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무보험자 3200만 명을 위해 2014년까지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의무가입을 폐지하는 등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진행형이다.

(주2)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건강보험 이전 및 책임에 관한 법안): 환자 정보를 보호하는 일종의 의료정보보호법이다.

(주3) PROS(Personalized Recovery Oriented Services, 개인맞춤식 재활서비스): 정신질환자의 재활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약물, 건강평가, 상담, 모니터링 등을 통해 입원률과 응급서비스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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